언제부터인가? 매년 10월 초4일에는 오산군 세일제를 봉행해왔고 병신년(서기1956년)에는 오산군 묘소 개사초, 석물 구비, 위토 구입 등의 종사를 무술년(1958년)에는 대동세보를 발간하는 등의 대소 종사를 수행했으나 전 종인을 대표하는 기구의 필요성이 요구되어 논의 되던 중 1970년 화순최씨 대동 종회가 서울에서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경하(25세. 부정공파)씨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각 지역과 소파 종중과의 연계를 통해 종회 발전을 꾀했으나 2대 회장 재임기간(1972년~1977년) 동안에는 집행부의 무성의로 종회 기능이 마비되어 유명무실한 종회로 전락하였다.
이를 개탄한 지방 거주 종인들이 1977년 4월 26일 대전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대동종회를 재건하면서 제3대 회장에 원국(23세 문정공파)씨를 추대하고, 1. 오산군 위토 증설, 2. 대동보 수보, 3. 화순 재각 건립 등 3대 사업을 설정하여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어 4대 호성(23세 문정공파. 1981~1983 재임), 5대 흥준(26세 부사공파. 1983~1985 재임), 6,7,8,9대 승렬(25세 부정공파. 1985~1998 재임)회장 재임 기간 동안 오산군 위토 증설, 갑자보 편찬, 화순재각<원모재> 신축 준공과 같은 우리 화순 최씨 대동종회의 숙원 사업을 마무리했다.
뒤를 이은 10, 11, 12대 대희(26세 문정공파, 1998~2006 재임))회장은 빈약한 종회 기금 확충과 후진 양성의 큰 뜻을 품고 솔선하여 거금을 출연, 종회 기금을 1억 원 확보하는 한편 종중 장학회를 설립하여 매년 10명 내외의 우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가하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우리의 뿌리를 알리는 교육을 위해 수련회를 두 차례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꿈들이 꽃피기 전에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 했으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3대 원용(28세 부정공파)회장은 2006년 취임 이래 14,15,16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선대회장의 유지를 이어 장학기금 확충에 진력하는 한편 새로운 대동보 편찬에 착수,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화순 최씨의 1천년 숙제 인 오산군 휘 세기의 화순 입향 시기 및 득관 경위와 고려 제2대 진각국사 혜심 스님이 우리 화순 최 씨라는 것과 갑자보 합보의 근거였던 화순군 휘 부와는 연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1984년 갑자보 편찬 시 무리한 합보를 위해 어지럽혀진 상계를 바로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