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입향 9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할 발상지 비 전면에 새길 비문을 올립니다. 2024년 12월 말일까지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곳 화순은 백제시대엔 잉리아현(仍利阿縣), 통일신라시대엔 여미(汝湄), 고려초기에 와서 오성(烏城), 산양(山陽), 화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초기부터 고질화 된 공신 귀족의 독단정치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정권의 확립과 지방향리(호족)들과의 융화적 정치질서의 확립이 시급한 고려조정의 정책에 따라 내사시랑평장사 문하시중을 역임하시어 조정중신이셨던 최 세기(世基) 할아버님을 인종 4년(서기 1126년) 5월 오성, 산양 두 곳 지명(地名)의 첫 글자를 취합한 오산군(烏山君)에 봉하여 남도안찰사로 화순현 팔판동 갱정마을(현 유천리)에 정착하여 세거하며 명문일가를 이룸으로써 우리가문은 화순 또는 오산 최씨(烏山 崔氏)가 되었다. 오산군 할아버님께서 타계하신 후, 오성산이 보이는 만호산 기슭 순곡 자좌에 유택을 모셨으니 이 분이 곧 우리의 시조이시고 화순은 우리 몸과 마음의 영원한 고향 발상지가 되었다. 갱정마을의 한 우물을 우리 조상들이 고향을 떠나며 “다시 돌아와 이 물을 마시겠다.”고 하여 갱래정(更來井) 또는 최씨 우물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근세까지 화순읍 팔판동에 존재하였다. 우리 문중은 고려시대에 많은 조상님들께서 조정에 나아가 충성으로 보국안민에 기여함으로써 시호를 받고 서원에 배향되는가 하면 현인일민의 공으로 정려를 받기도 하였으며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 중 제2대 국사인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俗名 崔 寔, 서기 1178~1234년)과 같은 고승도 우리 문중 출신인데 이곳 화순 출생으로 자치샘 관련 탄생 설화는 화순군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방어사공 휘 서지(湑之)계의 감찰공 휘 덕윤(德潤)파는 진천, 원주, 강화 지방에, 참의공 휘 원지(元之)계의 부사공(府使公) 휘 자해(自海)파는 순창, 나주, 황해도 재령에, 부정공(副正公) 휘 자하(自河)파는 김천, 보은, 세종, 진주, 산청, 서울에, 문정공(文貞公) 휘 자강(自江)파는 대전, 청주, 공주, 거창, 함양, 구례, 김천, 순창 등지에 누대에 걸쳐 번성, 관직에 나아가 충효 절의 청백 등으로 가문을 빛냈고, 명리를 초월하여 초야에서 학문연구와 인격 도야에 매진, 품격 높은 선비로 추앙받는 인물도 많이 배출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였다.
이제 시조 오산군 할아버님의 화순 입향 900주년을 맞아 득관 경위와 가문의 뿌리가 화순에서 비롯되어 누대에 걸쳐 나라와 백성을 위해 공덕을 쌓은 영예로운 가문의 역사를 돌에 깊이 새겨 우리 후예들도 훌륭하신 선조의 정신과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가문을 더욱 빛내줄 것을 간절히 당부하고 기원하며 이 비석 앞에 서는 모든 우리 문중 가족 여러분의 가슴속에 이 비석을 똑같이 아름답고 굳건하게 세워 조상님들을 뒤따르는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으시기 바란다.